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엮여 있으며, 이는 엄청난 선물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중요하다. 지금 하기로 결정한 것이 무엇이든 중요하다.
결정론이든 비 결정론이든 우리가 신이 아닌이상 우리는 어차피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것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모두는 중요하다.
여러분이 다르게 행동했을 수도 있다고 뼛속 깊이 느끼는게 중요할까? 내 경우 욕망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결정론과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
우리의 존재는 세상에 크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무의미한 결정까지도 결정론의 세상에서는 모두 중요하다.
현실에 감탄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기쁜 삶의 방식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현대 시대의 쳇바퀴 같은 삶에 갇혀 종종걸음 치며 무덤덤하게 살고 있는가? 이제는 숙달과 통제라는 거짓된 우상을 떠나보내고, 어느 곳을 바라봐야 할지 알 수 있다면 불확실성 안에 숨은 아름다움에 감탄할 때가 왔다.
가장 위대한 순가는 가장 효율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으며, 욕망을 달성하는 그 짧은 경험은 미뤄지고 그저 황홀한 존재의 순간이 상으로 주어진다.
효과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끔 불확실성을 완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은 더 나은 해결책을 의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다. 진화의 지혜는 똑똑함만으로는 해결할수 없는 문제들을 무작의 해결책에 의지하여 정면으로 맞선다.
피드백루프와 티핑포인트와 돌이킬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 대처할때, 여러분은 꾸준히 실험하고 있는지 확인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멸이 찾아올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최고의 우연성은 안적적으로 보이는 과거를 더 정확하게 분석하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가끔은 목적조차 없이 탐험하는데 있다.
때로는 효율이 적다더라고 목적없이 하고 싶은걸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스스로를 더 위대한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 그리고 아주 머나먼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상호 연결된 세계의 일체성이 꾸준히 초래하고 초래되는 복잡한 지각의 존재라고 생각하면, 결정론의 태피스트리를 인정하는 일이 아주 기쁘게 느껴질 수 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아주 작은 하나까디도 중요하다. 대부분이 생각하듯 이는 자유의지가 아닐지 모르나, 분명 가치 있는 의지임에는 분명하다.
우리가 하는 사소한 행동들도 무한한 가능성의 힘을 갖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상호작용속에 일어나며 독립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작은 변수도 크게 작용할수 있다. 이게 카오스 이론이다.
만약 사소한 변화가 큰 결과로 이어진다고 상상해 보라. 실제 세계가 그러하다. 우리가 조금만 바뀌어도 더 크게 훌륭해질 수 있다.
우리는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장 놀라운 발전이 일어나며, 이 말은 즉 모든 순간이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우발성의 세계
우발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실험 작업을 통해 발전한다.
진화가 그러하다. 진화를 대중적으로 논할때는 보통 가장 운이 좋은 개체가 아니라 가장 적합한 개체가 생존한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컴포트존에서 억지로 끌려나온 재즈 피아니스트는 불편한 상황에 적응하다 예상치도 못한 아름다운 예술을 만들어낸다.
모든 진화는 우발성 사건으로 일어나므로 모든게 유연이다. 발생되는 모든일에 무언가 음모가 있는건 아니다.
단축의 동물
진실의 동물과 단축의 동물이라는 개념이 있다. 진실의 동물은 모든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단축의 동물은 모든 사실을 간단화 하여 축약된 형태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아는 진실의 동물이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이는 실수이다. 왜냐하면 단축의 동물이 언제나 승리하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단축의 동물은 바로 우리다.
진실보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인지 과정을 통해 우리의 정신은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유용한 형태로 원인과 결과를 단순화 해서 이해할수 있게 진화했다.
목적론적 편향의 실수
보통 현실에서는 불안정한 의견에서 강력하게 자신감과 확실성을 표현하는게 수접어하고 확실해하는 것보다 낫다. 절대로 입 밖에 내선 안될 세 단어 “나는 잘 몰라요” 다.
우리는 누가 그랬는지 알고 싶어하고, 무엇보다도 왜 그랬는지 알고싶어한다. 이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무질서하고 임의적이기까지한 과정에 목적이 있는 질서정연한 이유를 붙이는 인지적 실수를 저지를 때 우리는 이를 목적론적 편향 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목적론적편향은 생존에 이득이 있어서 채택되었지만 이 기능이 오히려 독이 될 수 도 있다. 이 목적론적 편향은 일종의 클루지다.
하지만 우리가 좀더 진실에 가깝게 세계를 인지하고자 한다면 목적론적 편향은 실수다. 확률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유사성을 추정하는 것을 바탕으로 삼는다. 우리가 이미 경험한 것과 아무런 경험도 없는 것 사이의 유사성이다.
티핑포인트의 주기가 빨라진 세계
오늘날의 문명의 인구와 생태는 매뚜기때와 같다.
언뜻 보기에는 모든게 규칙적이지만 군집 자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규칙 속에 속해 있다.
우리는 연쇄반응이 엄청나게 큰 세계에 속해있다는 뜻이다.
복잡계에서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촉발한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안정되 보이지만 특정 임계치를 넘어서면 세계는 크게 자신의 모습을 크게 재구성하며 모든게 변화된다.
내 작은 노력이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지만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효율성이 극대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모든 일은 효율적으로 일어나며 급격하게 퍼져나간다. 쉴틈은 없다. 이런 세계에서는 세계가 변화야 다시 구성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확률에 대한 오해
혼돈과 확률,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착각해서는 안된다.
확률은 위험성을 다루는 훌륭한 도구지만, 불확실성에는 확률이 작용하지 않는다.
확률을 불확실 복잡계에 적용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의하기 쉽지 않고 사람마도 인식도 틀리므로 모든것이 엉망으로 틀어진다.
확률 이론은 일종의 지도다. 큰 도움이 되고 유용하지만 현실을 완벽히 반영하지는 않는다. 똑같은 강물에 몸을 두번 씻을수는 없다고 하는 고대 철학자의 말도 있듯이… 특히나 현실 세계에서의 사건에 발생은 딱 한번만 발생한다.
딱 한번말 발생하는 우발성의 세계에서의 확률은 무용지물이다. 동전던지기의 확률과는 틀린것이다.
사람들의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환경에 의해 운명이 좌우된다.
복잡계에서는 똑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행해지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결과가 틀려진다.
개개인의 발견은 유의미하다, 사소한 발견이나 사건은 없다.
올바른 이론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우리는 많은 경우 잘못된 정보를 주는 사람의 말을 겉모습만 보고 신뢰한다. 사람의 잘못된 인지편향중 하나이다.
아무리 타당하고 옳은 주장이라도 누가 말하느냐에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어떤 혁명같은 발견은 짠하고 갑자기 나타나는게 아니다. 돌연변이가 연속으로 나타나 유의미한 특징이 발현되듯 하나의 돌연변이이나 개개인의 발견은 유의미하다.
불변의 진리란 없다.
사회과학에서의 불변의 진라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갈림길의 정원이다. 특정 임계점을 지나고 나면 다른길로 접어들며 새로운 상태가 된다.
문제는 약한연결고리 문제와 강한 연결고리 문제로 분류할수 있다.
과학은 강한 연결고리 문제이며, 조정이나 자동차 부품은 약한 연결고리 문제이다.
아무리 잘못된 과학이론이나 가설이 많더라도, 강력하고 우수한 하나의 이론이 발견되면 나머지 이론들은 사라진다.
하지만 조정경기에서는 아무리 한명이 뛰어나다고 해도 다같이 협동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엔진이 아무리 훌륭해도 핸들이나 기어나 다른 부품이 망가진다면 무용지물이다.
과학은 강한연결고리 문제이지만, 예외적으로 사회과학은 잘못된 개념이 고쳐지지 않고 유효한 개념인냥 행사하며 영향을 주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의 잘못된 세상에 대한 인식
세상은 수학처럼 동작하지만 너무나 복잡해서 정확하게 사회과학 세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세상은 비선형이지만 사람들은 선형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사회과학은 정확한 인과 관계보다는 유용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결정론의 세계
현재의 과학은 이 세상이 결정론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과학 학자들의 생각하는 정설이다.
작가는 양자역학 조차도 미지의 이론에 기대어 자유의지를 되살려 보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정론은 자칫 잘못하면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정론을 위험요소라고 생각하고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결정론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위험요소라고 무작적 터부시 해서는 안된다. 두렵다고 진실을 피하기만 해서는 안된다.